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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8-18 1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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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타임스 오을탁기자>“한 취객이 큰 길로 나왔다. 꽤 깊은 밤이였다. 걸음걸이가 이보전진 일보후퇴였다. 근본은 양반 모양이었으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해진 도포, 떨어진 갓, 작다란 몸, 어느 모로 보든 한 표랑객에 지나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 그에게 달려들어 물고 늘어지려는 듯 짖었다” 김동인의 소설 '운형궁의 봄'에 그려진 상가집 개 흥선 대원군이 어려운 환경에 접해 있던 시절의 모습이다. 흥선 대원군이 죽은 직후 나온 것으로 보이는 작자미상의 순한문 전기 '대원군 약전'에 그려진 모습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이러한 궁핍은 그 뒤 아무런 의심 없이 인용됐다. 대원군이 외척세력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 미치광이 짓을 했다는 추측까지 덧붙여 TV사극에도 자주 등장했다. 당시 나름대로 총명하고 포부가 크고, 통찰력 뛰어난 대원군이 거리의 무뢰배로 위장해 때를 기다렸다는 야사(野史)가 정사(正史)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은 궁핍하지도 않았고 무뢰배도 아니었다. 대원군뿐만 아니라 이렇게 야사가 정사가 되는 황당 스타일 이야기는 TV사극이나 소설에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사극이나 소설은 픽션이다. 10%의 사실을 90%의 판타지세계로 그럴듯하게 묘사시켜 시청자나 독자들을 자극시킨다. 대개 그 자극 뒤에는 상업적인 노림수가 있다.

시청률이 있고 판매부수도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라든가 현기영의 '지상에 남은 숟가락 하나' 같은 소설도 그 연장선에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런데 소설이 역사의 정사처럼 인용되고 있다. 현기영의 소설 '지상에 남은 숟가락 하나' '순이 삼촌'에 나타난 제주 4・3사건은 양민학살극으로 묘사돼 젊은층은 그대로 믿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장준하 전 민주당 국회의원(이하 호칭 생략) 유골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두개골 뒤쪽의 6cm 크기의 구멍과 머리뼈 금 등을 두고 박정희 정부에 의한 타살 증거가 발견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장준하의 타살 의혹에 대해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장준하의 타살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대선후보직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하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조사결과 '진상규명 불능'으로 판명된 죽음을 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일 장준하 유골을 검시했던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도 소견서에서 “머리뼈와 골반에는 골절 소견이 있지만 다리나 늑골(갈비뼈)에는 뚜렷한 손상이 없다”며 “머리 손상에 의해 사망했으며, 머리뼈와 오른쪽 관골 골절은 둔체(딱딱한 물체)에 의해 손상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교수는 “(골절이)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혀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판단 불가'를 그들 입맛대로 고친다면 소설을 정사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여정부 당시 조사결과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판명된 죽음을 재점화 시키고 있는 민주당의 저의는 무엇일까? “정치적인 허위소문은 사흘 동안만 믿게 만들면 커다란 도움이 된다”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사상가 코시모 디 메디치의 말이다. '아차'하고 사람들이 미망을 깨달을때 쯤이면 이미 꾸며낸 이야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다.

민주당은 이미 큰 이익을 봤다. 안철수가 없으면 야권이 타격을 받는 현실, 불임 정당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네거티브의 추억에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한계다.

민주당 주장과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쓰는 역사만이 정사가 되어야 한다. 사실 뚜렷한 확증도 없이 단지 박정희 정부에서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박정희 탓이라면 이거야 말로 견강부회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비단 장준하씨가 아니라도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 진상은 조사되어 진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물증도 없이 막연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심증만으로 본질을 왜곡시킨다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아니면 말고'일지는 몰라도 고인만 비참해질 뿐이다.

과거 탓, 누구 탓 잘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꼴 못봤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는 기회를 살리고 위기를 피해갈 수 있지만 과거에 얽메인 자는 불확실성이 주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어쩌면 박정희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민주당의 한계는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박정희 탓이다. 김대중 다리가 부러져도 박정희 탓이요, 장준하가 죽어도 박정희 탓이다. 단지 박정희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에게 장준하를 찾는 것도 전형적인 박정희 컴플렉스다. 민주당, “박정희가 그리 두려운가?”
<프런티어타임스 오을탁 기자 (press@frontier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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