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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6-07 12: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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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1주일에 한 번씩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감동의 휴먼 스토리다.

탈북 미인들이 나와서 처음엔 웃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깔깔깔 호호호 한바탕 흐드러지게 떠들고 논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중 한 명이 자신의 기막힌 탈북 이야기를 한다. 말하다가 격정에 못 이겨 흐느끼며 비통해 한다. 그 순간 다른 미녀들도 자기 서러움에 복바쳐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주변 출연자들도 “아, 저럴 수가!“ 하며 소리 없는 눈물을 삼킨다.

22살 난 박수미 양은 17살 나던 해,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어머니는 도중에 잡히고 혼자서 도망쳤다. 공안에 들켜 버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산으로 들어갔다. 5시간을 헤매다가 옛 이야기 그대로, 멀리서 불빛이 반짝반짝 하는 것을 보고 따라가 보니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있다가 그녀를 맞았다. 그리곤 그녀는 중간 이야기를 생략하고 “그렇게 해서 그 할머니 도움으로 탈북 할 수 있었다”고만 말했다.

어머니 생일이 5월 16일이라며, 그녀는 케익에 촛불을 붙이고 북한에서 부르던 사모곡을 불렀다. 온통 눈물 범벅이 된 채. 아, 이건 픽션이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변절자’란다. 배고파 죽겠어서 주린 창자 좀 채워 보려고 한 게 변절인가?

북에서는 그걸 좀처럼 채울 방도가 없어서 두만강을 몰래 건넌 게 변절인가? 공안에 붙잡혀 북송당하지 않으려 죽기 한사하고 도망친 게 변절인가? 언제 붙잡힐 줄 모를 중국보단, 잡힐 공포 없는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게 변절인가?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도망치고 붙잡히고 또 도망치고 또 붙잡히다가 안전한 곳, 밥 먹을 곳, 수용소에 갇히지 않을 곳으로 피난하고 망명하는 모든 불쌍한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 인신매매 당하는 사람들이 다 변절자란 말인가? 묵숨 걸고 베를린 장벽을 넘었던 수많은 동독인들도 변절자였나? 박수미양에게 '선(善)한 사마리아 사람'의 손길을 뻐쳐 준 산골짝 오두막 집 그 착한 할머니도 변절자였나?

지금 우리는 박수미 양 같은 죄 없는 탈북동포들을 대놓고 변절자라고 욕하는 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고 “20대 운동권 같이...” 투쟁하겠다며 설치는 완전 거꾸로 된 세상을 눈앞에 보고 있다. 이게 정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알아 온 대한민국 맞나?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런 통탄을 하면 대뜸 ‘색깔공세’라며 치고 나오는 상투적인 낙인이다. 어째서 말도 못하게 하는가?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발버둥 친 동포들을 변절자라고 부르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항의만 해도 그게 곧 천하에 몰매 맞을 색깔공세란 말인가?

우리가 직면해 있는 싸움의 본질은 그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충실'이냐, 아니면 ‘인간 본성에 대한 역행’이냐의 싸움이다. 탈북자들은 인간본성을 따랐던 사람들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안전하게 밥 먹을 곳을 찾아 헤맨 것은 인간 본성 그 자체였다. 그런 그들을 가련하게 생각해서 돕는 것 역시 인간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건 이데올리기 이전의 원초적 ‘생명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을 변절이라고 부르겠다면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반(反)인간적임은 물론, 반(反)생명적인 부류임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류근일 언론인/전조선일보 주필/ 뉴스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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