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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3-05 06: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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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치권력이 이상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의 사회주의는 이미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제도적 지배의 정통성을 상실하였다. 몇 차례의 당규약 개정으로 5년마다 개최하기로 했던 당대회를 지우개로 지우고 '필요에 따라'라는 구절로 대신하였지만 32년이 지나도록 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대회를 열수 없음에도 당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걸 보면 그 용기가 대단하지 않은가.

북한 노동당이 다시 4월 중순에 당대표자회를 소집한다고 정치국 명의로 공고하였다. 지난 2010년 9월 28일 김정은을 등장시키는 3차 당대표자회 이후 꼭 1년 7개월만의 일로 부디 순차를 따지자면 4차 당대표자회가 되는 것이다.

당대표자회는 최초로 1958년에 1차, 1966년에 2차, 2010년에 3차, 그리고 이번에 4차가 된다. 대회를 열 형편이 못되어 대표자회로 대신하려는 의도는 이해하나 굳이 그러면서까지 깃발을 고수하려는 노동당의 고집에 세계가 조소를 보내고 있다. 이러다간 당대회는 6차에서 멈추고 앞으로 계속 대표자회만 열어야 할 형국이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인민공화국'이 아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대표공화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군정치로 노동계급이 실종된 1990년대 말 이후부터 이미 북한은 인민공화국이 아니었지만 지배구조에서마저 대중의 참여가 단절되고 소수의 대표들로 정책결정을 내려야 하니 당연히 '대표공화국'이 되어 마땅하다.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의 수정은 굳이 인간의 외모변화에 비유하자면 성형수술이다. 지배구조 개편 즉 리더 교체는 트랜스젠더 정도라고 할까. 제아무리 뜯어고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국식 개혁-개방 선언할 수도

이번 당대표자회 개최의 목적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당의 지배구조는 이미 3차 대표자회에서 개편한 만큼 아마도 그 어떤 노선과 진로문제를 천명하는 것으로 대표자회 아젠다를 잡았을 것 같다. 물론 김정은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반짝 잔치마당이 될 수도 있다. 과연 새로운 노선과 목표는 무엇일까?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저의 좁은 식견으로 중국식 개혁-개방을 선언하는 노동당의 궤도수정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 노동당은 이미 지난해 초순경, 그러니까 김정은이 어느 정도 노동당 안에서 자리를 잡은 직후부터 개혁 개방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달래 북한의 고위층을 총동원하여 지난 해 3차례의 중국 방문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개혁 개방을 가르치기 위한 그의 마지막 '현장학습'이었다. 김정일이 사라진 이후 올 들어 북한의 중간급 간부들과 테크노크라트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가 현재 개혁 개방의 '실습'을 벌이고 있다.

북한 노동당의 궤도수정은 필사적인 생존전략의 일환이지 자연tm러운 변혁에의 동참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변한다기보다 죽지 않기 위해 개혁 개방을 선택하는 것이다. 김정남이 그 정답을 주었다. "개혁 개방하면 북한체제가 망하고 개혁 개방하지 않으면 김정은 권력집단이 망한다고…" 그렇다면 북한의 개혁 개방 조건을 성숙되어 있는가. 북한의 90년대의 변화와 퇴행, 굴절과 몰락과정은 내키지 않은 순응, 그리고 퇴락에 의한 강제적 변화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퇴락에 의한 탈-전체주의를 말할 때, 지배자의 전체주의적 지배욕구와 능력의 퇴락이 중심이 되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전체주의적 지배 욕구는 존재하지만 그 능력이 퇴락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전체주의적 지배능력 퇴락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1990년대 경제난이 북한 당국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을 현저히 감소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경제사정만 복구된다면 다시 사회주의 지배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누가 지배하느냐"보다 "어떻게 지배하느냐"의 정치문화에 익숙해 있다. 김일성이든 김정일이든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김정일은 그와 같은 북한 주민들의 욕구를 너무 무참하게 짓밟았다.

이제 2대 세습 그 굴욕의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김정은이란 지도자가 나타나 '영명한 지도력'으로 또 다시 지상낙원 공약을 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노동당 제5차 당대회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온 북한 경제는 권력 중앙에 집중하는 경제 잉여의 양이 축소함에 따라 중앙관리 경제를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재정과 자원을 고갈시켰다.

경제통제가 실종된 사회주의는 존재이유도 함께 실종되기 마련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가끔 그 특유의 '현지지도정치'로 시범적 단위들을 둘러보며 마치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주절대는 아래 일군들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통치력을 행사했을 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빈곤의 지도자'가 되어 버렸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가 궤도에 들어서는데 건국 후부터 약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이제 바닥에 서 있는 북한경제가 개혁이란 열차에 올라타는 데도 최소한 10년은 예상해야 할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이룩한 사회주의 근대화의 열매는 한 순간에 식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북한의 등소평'은 김정은 아닌 장성택일 수도

북한 경제의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데로부터 위로 치솟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북한은 이미 개혁의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지난 1983년 합영법 채택으로 시작된 북한 경제개혁의 실험은 뼈아픈 실패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최근 김정은 등장 후 북한은 중국식 개혁과 개방 답습이란 긴급처방에 고심하고 있다. 먼저 북한이 체제전환기를 맞아 개혁을 의미하는 선언은 김정은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즉 김정은은 "과거에는 식량이 없더라도 총알이 없어서는 안됐지만, 지금은 총알이 없어도 식량이 없으면 안 된다"는 중대발언을 하였다.

섭정의 중책을 맡은 장성택은 요즘 무척 바쁘다. 북한의 변신을 놓고 김경희와 큰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어린 지도자를 앞세우고 쓰러지는 한 체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장성택은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아마도 김정일이 원하던 '북한의 등소평'은 김정은이 아닌 장성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정은은 외모만 김일성을 연출한 것이 아니다. 해방 직후 다이내믹하게 진행되던 북한 건국의 파노라마가 지금 신통하게 재현되고 있다. 문맹률 95%의 북한 주민들을 이끌고 건국의 앞장에 섰던 김일성, 오늘 컴맹률 95%의 북한 인민들 앞에서 김정은이 CNC를 읊어대며 우쭐거리고 있다. 실패의 대명사 김정일은 빨리 지워야할 '브릿지 지도자'로 남지 않을까.

분명하게 다른 것은 그때는 인민대중이 모두 참여하는 인민공화국의 형식이었지만 지금은 인민은 장마당경제로 따로 놀고 평양에서 소수의 대표들끼리 마주앉아 이른바 '소수 정치쇼'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안찬일 논설위원<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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