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남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 강인덕의 북한 바로보기(4)
지난 1월 하순 집으로 배달된 국제우편 소포를 뜯었더니 일본 친구가 보낸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 바로 도쿄신문 고미 요지 외교안보담당 편집위원이 쓴 ‘아버지 김정일과 나, 김정남의 독점 고백’ 이었다.
이틀 전 우리나라 신문과 TV가 크게 보도했던 바로 그 책-7시간의 인터뷰와 150통의 E메일로 엮은-인지라 받자마자 정독했다. 대체로 우리 신문-TV가 전했던 요지와 크게 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몇 대목에서 ‘역시 그렇구나’하는 느낌을 가졌기에 ‘김정남의 답변부분’ 요약을 소개한다.
(1)김정은의 권력세습에 대하여
“중국에서는 마오쩌뚱일지라도 세습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발전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세습 때문에 역으로 북한의 국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 3대 세습은 사회주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나는 이전부터 지적해왔다.
이런 선택(3대 세습)을 하게 된 것은 북한으로서도 내부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의 안전과 순조로운 후계를 실현하기 위해 3대 세습을 해야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안전이다. 이런 이유에서 3대 세습을 했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북한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겠지요…”
“어떤 시스템에서도 반대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세력이 대다수냐, 소수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개인 생각으로는 3대 세습을 했지만 (인민의) 유락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좋다면 반대세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3대 세습에 추종할 수는 없다. 37년간 절대 권력을 2년 정도의 후계 교육을 받은 젊은 세습후계자가 어떻게 받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젊은 후계자를 상징으로 앉혀놓고 파워-엘리트 그룹이 아버님(김정일)의 뒤를 이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중국이)세습을 인정했다기 보다는 북한 자신이 선택한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2)북한의 체제개혁과 개방 가능성에 대하여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 주민들이 풍요롭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개혁-개방이 체제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이다.
그 다음 한반도의 평화정착문제(를 협의하고) 그 다음 경제재건 방책을 취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의 대립이 심하여 이 시점에서 개혁-개방을 기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개혁-개방의 시점에 대해서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 파탄은 눈에 보이고, 그렇다고 개혁한다면 체제붕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고, 이런 중에 시간이 다 가고 말지 않을까요? 내가 듣는 바로는 2006년 장성택이 중심이 되어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도입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2006년 장성택의 중국 방문은 아버님(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부속조치로 실현된 것이라고 기억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북조선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기대했다. 장성택씨가 자신도 역시 개혁-개방을 모색했다고 하지만 개방 시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에 의한 내부 규율 파괴를 우려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본다.
신의주 개발실패는 북한에게 일방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중국인 양빈을 행정장관에 임명한 것은 중국 정부와 사전 조정 없이 개발을 추진하려 한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북한은 당시 신의주를 중국의 마카오와 같은 카지노사업을 주도하는 환락도시로 개발하려 했는데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동북3성의 자본 유출을 우려하고 제한을 가했다…”
“나는 개혁-개방이 필요함을 언급했지만 북한에서는 (내 언급에 대하여) 그 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발전에 대해 다른 대안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그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는지 정말 모르겠다. 동생(정은)이 개혁-개방에 부정적이라면 과연 그가 앞으로 어떤 북한 발전 비전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이전에도 지금도, 북한은 개혁-개방을 해야 만이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에 투자유치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현실성이 없다.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 땅에 투자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3)2012년 ‘강성대국’, ‘경제대국’ 건설 가능성에 대하여
“현 정세로써는 북한에의 외자유치는 어렵다. 외자유치에 대해 아버님(김정일)은 노력했지만 빠른 시일 내 오늘의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2012년 ‘경제대국’이 된다는 것은 거의 무리한 것이다.
경제 관료들 중에는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 아무리 노력이 크다 해도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정세, 주변국의 상황으로 볼 때 2012년까지 경제대국이 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하다…”
“정권의 실책으로 경제가 파탄되었는데 그 이유를 미국의 고립암살 책동 때문이라고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반미감정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그처럼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데 ‘강성대국’이던 ‘강성국가’이던 알맹이 없는 말만 해서야 되는가? 주민들이 굶고 있는데 ‘강한대국’, ‘강성대국’이란 말만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4)‘선군정치’와 군부 영향에 대하여
“북한은 내부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하다. 남한에 포격을 가하는가 하면 대화를 하자고도 한다. 한편 북한 군부가 대두하고 있다. 아버지(김정일)는 군을 배경으로 하여 나라를 통치했으니까 군의 권력이 너무 커졌다고 생각한다. 후계 작업이 실패하면 반드시 군이 실권을 장악할 것이다…”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 북한은 국력이 핵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대립상황에서는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핵보유국이 외부세력의 압력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북한처럼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장소에 위치하고,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나라에서 핵을 포기할 수 있는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면관계도 있고 하여 이 정도로 줄인다. 필자는 김정남의 언급을 읽으면서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인지라 북한이 처하고 있는 정세를 대단히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김씨 왕조’의 ‘세자’ 지위에까지 거의 다가섰던 그인지라 왕조의 위기, 자칫하면 왕조의 멸망까지 올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직감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필자는 김정남의 고백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김씨 왕조의 살길은 개혁-개방 이외 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체제위기를 자초할 것이 두려워 손댈 수 없다면 2002년 7.1조치처럼 생산관리 방식의 개혁이나 아니면 흐트러진 외화벌이 사업만이라도 경제전문가들이 맡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마저 불가능하다면 자연발생적 장마당이 담당하는 역할만이라도 허용한다면 체제안정과 북한주민의 경제생활 향상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외부 정보는 선군정치가 몰고 온 모순을 더욱 명백히 드러낼 것이다. 필자는 김정남의 ‘고백’을 읽으면서 서울에서 북한을 들여다보는 우리나라 관측자들의 판단이 크게 빗나간 것이 아님을 재확인하며 더욱 매진해주길 기대한다.
<강인덕 일본 성학원대학 종합연구소 객원교수, 전 통일부 장관, 뉴스파인더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