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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1-08 19: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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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파인더 최원영기자
‘북한에 대한 행동을 개시할 때’. 체코의 민주화영웅 하벨 전 대통령이 2004년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지난달 18일 세상을 떠난 하벨은 과거 벨벳혁명을 이끈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서, 심각한 북한 인권상황에 주목하고 국제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힘썼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19일 북한은 하벨이 세상을 뜨기 하루 전인 17일 김정일이 사망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공산체제를 부수고 민주화를 이룩한 투사와 공산 독재의 상징적 존재가 하루를 사이에 두고 세상을 떠남으로서 세계는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실제로 하벨은 김정일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세계적 대응을 요구한 바 있다.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과 (사)4월회(회장 윤영오), 주한체코공화국 대사관이 주최한 ‘故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대통령 추모회’가 6일 서울 종로구의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후원으로 열렸다.

극작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한 하벨은, 유혈사태 없이 공산당 정권을 붕괴시킨 소위 ‘벨벳혁명’으로 호칭되는 체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큰 갈등없이 슬로바키아와의 연방해체를 수행한 정치 지도자다.

국제사회로부터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아왔고 대통령 재직시 북한인권운동가들을 접견,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뒤로도 각국 요인들과 만나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각국 언론에 북한인권에 관한 논설을 기고했을 뿐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적극적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추모식이 열린 6일은 고 하벨 대통령이 주도해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77헌장’ 발표 3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77헌장은 공산주의 정권시절 체코에서 일어난 반체제 운동을 상징하는 문서로, 하벨의 주도아래 지식인 257명이 발표했다. 인권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초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의 윤현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과거 하벨이 군중을 향해 연설했던 “진리와 사랑은 거짓과 미움을 반드시 이긴다”, “군중을 향해 전체주의 통치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자”를 되뇌이며 “북한 땅에서도 진리와 사랑에 근거한 새 물결이 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이사장은 2002년 9월 프라하 성안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하벨 대통령을 만나 담화했던 기억을 끄집어 냈다.

당시 북한인권상황에 대해 장시간 귀기울인 하벨은 크게 공감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이어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한달 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만난 하벨은 북한인권시민연합 대표단과의 회견을 소개, “북한의 인권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 공동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 후로도 하벨은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하는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 축하메시지를 보냈고, 2006년 10월 말 키엘 마크네 본데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와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 교수와 함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해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또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요 신문에 북한인권의 개선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따.

이때 기고했던 글이 ‘북한에 대한 행동을 개시할 때’로써 북한 독재정권의 ‘정치범수용소’를 나치 홀로코스트와 사담후세인 치하의 잔혹한 감옥환경에 비유했다.

하벨은 한반도의 북쪽 지역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 독재자가 다스리고 있으며,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은 후 대규모 공산정권을 물려받아 뻔뻔하게도 개인숭배를 강화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하벨은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햇볕정책’을 우려한 바 있다. 햇볕정책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더라도 결국 끊임없는 양보와 유화책에 기반하고,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전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무고한 인명을 살리는 데는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었다.

하벨은 “햇볕정책이 결과적으로 평양의 지도자가 집권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고문을 통해 하벨은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의 민주국가들이 공동의 입장으로 뭉쳐 대규모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전체주의 독재자에게 양보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을 권고했다.

4.19민주이념을 계승·발전시키는 모임인 4월회 윤영오 회장은 “지난 달 18일과 19일 하루간격으로 세계는 두 개의 죽음을 마주했다”면서 “한 명은 무도한 공산주의 독재정권과 싸운 민주투사 하벨이었고, 다른 한명은 공산주의 특권층의 향락을 누리며 인민을 압제한 독재자 김정일이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프라하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미국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장관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외국 사절들이 조의를 표했다”면서 “하지만 평양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는 강제로 동원된 인민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에 없는 주한체코공화국 대사를 대신해 참석한 이반 블첵 대리대사는 하벨이 인도를 방문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보안구역을 벗어나 인도거리를 함께 걸으며 나눈 소박한 대화들을 공개하는 등 하벨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설명했다.

이반 블책 대리대사는 “그의 사상을 반복해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을 따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한겨레 계절학교’ 학생 약 40여명이 참석했으며 전 외교관들 및 북한인권관련 단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뉴스파인더 최원영 기자 lucas201@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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