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한 안정? 조속한 붕괴가 맞다
- 김정은 새 체제에 성급한 기대는 금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급사를 계기로 남북한관계 개선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고개 든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남부관계를 처음부터 새롭게 짤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졌다.”고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대북관계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며 북한의 상대적인 변화를 기대하였다.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5.24 대북제재 조치의 조속한 해제를 검토하고 천안함에 대한 사과 문제도 유연성 있게 대처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선 대규모의 경제적 지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북 5.24 제재조치가 유명무실해지는 건 아닌가 의심케 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북한 권력내부의 강경파가 득세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김정은 비위맞추기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우려케 했다. 그밖에도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주범인 김 위원장이 사망했으므로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선언하였다. ‘선 천안함 사과 후 북한 지원 틀’이 흐려지는 게 아닌지 걱정케 하였다.
저와 같은 이 대통령과 정부 고위층의 희망적 관측은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해 뭔가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김정일이 관속으로 들어갔으므로 그의 후계 권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득불 남북관계를 “새롭게” 짤 수밖에 없다는 기대 그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권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아직 이르다.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자신의 아버지 노선을 답습할게 분명하고 그를 둘러싼 기존 권력층도 김정일 유훈을 옹호한다는 데서 그렇다. 물론 김정은은 파탄 난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아버지의 선군정치와 폐쇄정책을 포기하고 개방으로 나설 수는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와 개방으로 방향을 틀 경우 김정은도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처럼 시위대에 체포되어 처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데서 쉽게 나설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유훈을 어겼다는 죄책감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북한 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사설을 통해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선군영도를 높이 받들고’ 운운하며 김정일 노선 승계를 역설하였다.
본격적인 실용주의로의 괴도 수정은 김정일 노선을 반대하는 세력이 김정은 권력을 몰아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중국에서 공산주의 교조주의를 벗어나 실용주의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마우쩌뚱(毛澤東) 사망 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우쩌퉁 지지자들을 모조리 제거했던 데서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에서는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새롭게 짤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졌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새롭게 짜려면 덩샤오핑과 같은 사람이 평양에 나타나 김일성*김정일의 유전자(DNA)가 뼛속깊이 박힌 김정은 권력을 제거하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가야 한다. 여기에 남한 정부는 김정은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새로운 실용주의 세력의 등장을 유도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담화문을 통해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담화문은 김정은 권력의 ‘조기 안정’ 보다는 새로운 지도력과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는 뜻으로 문맥을 잡았어야 했다. 미국처럼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안정의 새 시대를 열길 바란다“는 식으로 새로운 리더십만을 강조하였어야 옳다.
앞으로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김정은 권력의 조속한 안정 회복이 아니라 조속한 붕괴를 유도해 가야 한다. 그것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의 대남 폭력도발을 도려내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근본적으로 다져가는 길이다.<정용석 논설고문(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전동아일보 논설위원>
[덧붙이는 글]
썸네일사진 다음(Daum)에서 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