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등장에 조건 달면 안된다
- 의원들, 재창당 이전에 마음부터 비워야
한나라당이 콩가루 집안이다. ‘안철수 신드롬’에 영향을 받아 대오각성하는 듯 하더니 아직도 갈 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로 갈라져 잇단 의총을 열어 장시간 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재창당을 요구하는 재건축파들은 박근혜에게 전권을 주는 것에 동의하지만 재창당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나라당의 낡은 정치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새로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멀어진 민심이 다시 돌아 올 것이란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열세에 몰리자 일부가 당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 중 정태근, 김성식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정 의원은 “더 이상 낡은 구조를 온존시키는 데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탈당을 결심했다”고 했고, 김 의원은 “지금 국민의 명령은 한나라당을 근본적으로 혁명하라고 하는 것인데 당이 주저주저하고 있다”고 탈당의 변을 말했다.
이들 외에도 몇 몇 의원들이 자신들의 거취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을 쇄신파라고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을 환골탈태해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만이 ‘쇄신’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이 안 받아 들여졌다고 해서 당을 떠나겠다는 것은 마치 장마철에 뚝방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뚝방을 떠나는 쥐들과 다름없다. 온 힘을 기울여 뚝방을 고쳐 무너저 내리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살겠다고 떠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 지경이 된 데는 그들도 책임이 있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한나라당이 현재보다 좌클릭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한나라당 이름으로 출마하면 승산이 없다싶으니까 한나라당이 ‘쇄신’을 받아 주지 않는 다는 명분으로 떠나는 것이다. 대부분 서울-수도권 출신의원들인 쇄신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특히 이들 지역에서 한나라당 인기가 바닥인 것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당명을 바꾸고 새로 치장해서 ‘새 점포’를 열면 낫지 않겠느냐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과 한나라당을 생각한다면 한나라당 안에서 ‘환골탈태’노력을 해 보는 것이 순서다. 그런 점에서 출마포기를 한 홍정욱 의원이 그들보다 윗길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의정활동을 하며 노력했으나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미련 없이 다음 총선에서 출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재창당’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그들뿐 아니라 이른바 친박이나 친이도 마찬가지다. 친박이 다수 포진해 있는 영남권의 상당수 중진들도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친박이나 친이의 상당수 의원들도 당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 이래서는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 그들도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한다.
옛날에 왕은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부월(斧鉞)을 내렸다. 부월은 장수가 부하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지금 한나라당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창당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모두가 마음을 비우고 박근혜에게 부월을 내리는 것이다. 박근혜가 재창당을 하든, 기존 당 안에서 혁신을 하든 그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가 온갖 지혜를 발휘하도록 뒤를 밀어 주는 것이다.
<도준호 뉴스파인더 대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