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1-12-05 20:47:50
기사수정
50년의 군사독재와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미얀마(구 버마)가 서방을 향해 개방과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매우 전격적이고 전례가 없는 반전이다. 미얀마가 민주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 총선에서 민선대통령으로 선출된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취임하면서 부터다.

세인 대통령은 정치범을 포함한 6천 3백여 명의 죄수도 조만간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1962년 쿠데타 이후 49년간 계속된 포악한 독재체제에서 발표된 가장 획기적인 민주화 조치이다.

오바마 행정부도 기다렸다는 듯 이에 화답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일 이 나라를 전격 방문했다. 힐러리는 세인 대통령 및 아웅산 수치 여사와 연달아 회담하고 민주화와 개방의 길로 나온 미얀마 지도자들을 격려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의 회담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고 화기애애해서 마치 전통적 우방 지도자들 간의 회담을 방불케 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하기는 50년 만이다. 그만큼 파격적이다. 힐러리 장관은 미얀마가 가시적 개혁조치를 추가로 취할 경우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20년 전 단절된 외교관계도 복원하겠다고 시사했다.

미얀마의 변신은 국제사회의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나라는 그동안 중국과 밀착해 폐쇄와 고립을 자초했다. 또한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암암리에 무기거래를 지속했다. 심지어 북한의 핵 기술을 반입한 의심도 받고 있다.

힐러리 장관이 이 나라의 민주화를 환영하면서도 유독 북한과의 관계단절을 강하게 요구한 건 의미심장하다. 미얀마가 중국과의 밀월을 청산하고 서방과의 대화, 특히 미국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제스처를 보인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중국에만 의존하면서 고립정책을 계속하다가는 망국의 화를 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군사 지도자들의 생각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의 “서방화”로 이제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라는 북한, 이란, 시리아 정도가 남았다. 따라서 도도한 국제사회의 조류 앞에 이 나라들이 영구히 반서방 노선을 고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리드해온 아웅산 수치 여사는 정부 발표를 환영하고 즉각 세인 대통령과 만나 향후 정치 행보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여사는 이미 지난 8월에도 세인과 만나 민주화 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여사는 며칠 전 가택연금 해제 1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 세인 대통령도 진정으로 개혁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말함으로써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정부와 수치 여사 사이에 이처럼 화해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반백년 만에 처음이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주의민주동맹(NLD) 당은 1990년 총선에서 압승했으나 군사정부는 선거결과를 무효화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하고 철권통치를 계속했다. 군부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이 된 세인은 아직 군부의 섭정을 받는 처지이나 강력한 개혁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야당과 국제사회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 속에서 중국의 경제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미얀마가 예상을 뒤엎고 급속한 민주화로 전환한 데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과도한 지원이 계기를 만들었다.

군사정부에 대한 지원이 군사독재의 종말을 초래한 정치적 아이러니의 극치를 만든 꼴이다. 이런 반전은 물론 중국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접경에 합작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중국은 댐 건설을 돕는 대가로 미얀마의 자원을 “착취”하는 속셈을 드러냈다.

이 댐이 건설되면 미얀마의 자연은 파괴되고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한다. 댐 건설로 생기는 이익을 중국이 독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본 미얀마 국민들이 댐 건설에 완강히 반대하자 세인 대통령은 댐 건설을 중단하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제 침체와 중국에의 과도한 경제 예속에 불안을 느낀 세인 대통령은 1인당 소득 2천 달러의 미얀마 경제를 구출하기 위해 고뇌의 결단을 내린 셈이다. 중국은 결국 경제지원을 미끼로 남의 나라 자원을 통째로 삼키려다 자충수를 둔 셈이 되었고 미국은 동남아에서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는 외교노력에서 일단 성과를 거두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미얀마가 근 50년의 폭압정치 끝에 마침내 수치여사에게 “굴복”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수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방의 압력이 작용했다. 오죽했으면 미얀마 군부가 수치의 “인질”이 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치 여사의 자력(磁力) 또는 흡인력은 “처절한 순수”(fierce purity)와 양심에서 나온다고 그녀의 전기를 집필한 저스틴 윈틀은 분석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힐러리의 방문이 양국관계에 “새 이정표”를 열었다는 세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얀마와 미국이 생산적인 도박을 시작했다고 논평했다.

<뉴스파인더 조홍래 논설주간>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orldnews.or.kr/news/view.php?idx=1263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