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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11-02 05: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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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정치수명이 끝나간다.-

대선에 나와 패하더라도 대선에 나온 후보의 정치적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되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통상의 관례였다. 그만큼 대선은 정치인에게 존재감을 심는 데 그만이다. 당선권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던 박찬종 후보가 대선 후 차기 주자로 급부상한 일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대권을 놓고 다퉜던 정동영 의원은 대선 후보로서 좀처럼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했다. 대선 후 18대 총선에서 조차 낙마하고 겨우 고향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복당하고 정계에 복귀하는 등 대선 후보의 위상은 말이 아니었으며, 본인도 대권 후보로서 미미한 존재감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민주당내 정치적 라이벌인 굴러온 돌 손학규 대표 첨예한 신경전 속에 정국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지만, 어딘가 손학규 대표 보다 무게감이 떨어져 보인다.

손학규 대표는 좌파적 중도노선을 견지하고 분당 선거 등에서 승리하고 정치적 기반을 잡았다. 손학규 대표와 라이벌 관계에 놓이고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심과 견제심리가 의도적으로 정동영 의원을 한참이나 좌측으로 이동시킨 것 같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대해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선 손학규 대표와는 정반대로, 정동영 의원은 한진중공업사태, 제주도 해군기지 등에서 더욱 좌측으로 이동하여 극좌노선을 견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한미 FTA에서는 외골수적 극단으로 치달으며 손학규 대표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자신이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으로 있으면서 추진한 한미 FTA에 대하여, 정치인의 공언은 한낱 껌 값으로 만들고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꾸어 그때는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한미 FTA에 응하는 정동영 의원의 발걸음이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싶다. 미 대사관까지 쫒아가서 53년간의 혈맹으로서 기둥을 운운하고 한미 FTA로 하나의 기둥을 더 세워야 한다고 강변하던 정동영 의원이었다. 농업의 파고는 머리띠 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며, 구체적으로 국민 일인당 30만원의 소득증대로 열변을 토하던 정동영 의원이었다

▲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옷만 입은 이완용"으로 비유한 정동영 의원이 네티즌들의 반발을 사면서 '거짓말쟁이'에 급기야 "비겁한 기회주의자로" 로 몰리고 있다.
그러한 정동영 의원은 외교부 직원들과 김종훈 본부장을 “이완용”으로 만들어 극단적 모욕을 주었고, 을사늑약을 체결한 당대의 매국노로 만들었다. 더욱이 “한미 FTA는 한국을 작은 미국,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것” 이라는 발언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 후보가 되었는지 국가수준에 심한 자괴감까지 가지게 한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한미 FTA에 대하여 안면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는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투사가 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희극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제는 너무 멀이 와서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은 것 같다.

1977년 세계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여객기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첫 취항을 하게 되었다. 9시간이나 걸리는 미국까지의 비행시간을 3분의 1로 줄여버렸고, 엄청난 자금을 들여 온갖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고 첫 비행에 나선 콩코드 여객기는 영국과 프랑스 항공기술의 총아였고 국가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시속 2,000Km에 이른 음속 2.2배 속도로 날기 위해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여 날렵하게 만들어 승객은 일반여객기의 4분의 1 밖에 태울 수 없으면서 과도한 연료비를 부담해야 했다. 따라서 3배정도 빠르게 운송하는 대신 항공료는 15배 정도나 비쌌다. 비싼 항공료로 고객이 외면하고, 심각한 소음공해, 잦은 고장, 고질적인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며 항공사는 막대한 적자를 보며 무려 26년간 콩코드의 실패를 인정치 않고 아집으로 운행 했다. 콩코드가 가진 한계는 개발전에 모두 제기된 문제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개발을 포기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비판을 무시하고 개발을 시작한 후 막대한 개발비용을 쏟아 부었다.

끊임없이 중단을 요구하는 비판과 충고를 무시하고 이미 시작한 막대한 개발비용을 을 감안하여 투자를 멈출 수 없었고, 취항 후에도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운항을 계속했다. 30여년간 천문학적인 돈만 날렸다. 즉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주식투자를 한 후 뚜렷한 손실이 예상 됨에도 본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손절매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된 것이다.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이다. 이는 “콩코드의 오류”라는 불명예스런 용어까지 만들었다.

열우당시절 당 최고 권력자인 당의장으로 대통령과 같이 추진하고 결론을 맺은 한미 FTA에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가장 강력한 반대자가 된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너무 멀리 와버려 되돌릴 수 없는 정동영 의원은 “콩코드 오류”를 새김질 해보길 충고한다. 한미 FTA 반대가 잘못이라는 것은 본인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을 가진 반대에 집착하며 미련을 두면 둘수록 정치수명은 단축되기만 하니 하는 말이다.

<프런티어타임스 최구섭기자 (www.frontier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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