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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10-26 15: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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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故 朴正熙 前 大統領 친필 휘호. 삼가 故人의 영면과 명복을 엎드려 빕니다.
-10월 26일, 박정희 역사를 되찾는 날-

“부패와 부정과 무능과 안일, 정체와 무기력으로 기식(氣息) 암암하던 이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와 소생의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몽롱한 깊은 잠결에서 잠을 깨고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1961년 5월 16일 반만년 패배주의를 일소하는 혁명의 횃불이 타오르던 역사의 순간을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일기장에 남겨 놓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앞에 놓인 조국은 참담하기만 했다. 북의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언제든 남침은 다시 시작될 풍전등화의 조국이었다. 더욱 고약스러운 것은 똥구멍이 찢어지는 가난과 패배주의였다. 수십년 지속된 부패와 무능, 체념과 포기는 민족성으로 굳어 있었다.

5.16 혁명이 있던 해 기록적인 대홍수로 골병이 들었고, 62년에는 태풍과 가뭄으로 한해 농사를 고스란히 망쳤으며, 1963년은 보리수확기 엄청난 양의 비로 보리수확이 급감했다. 64년은 연이은 홍수와 가뭄, 태풍으로 사상 최악의 흉년기가 도래했다. 천지신명이 혁명정부를 시험하는 최대의 위기가 덮쳤다.

당시의 상황을 백기완 선생은 “당시 굶어죽는 사람들이 요즘 굶어죽는 쥐새끼보다 많았던 시절이다. 당시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은 대단한 고민거리 였을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혁명 조국에 가난과 무기력, 타성, 영양실조와 질병, 배고픔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상의 모진 비난과 모함 앞에 자신을 태워 천형처럼 보이는 그 숙명의 굴레를 벗기는 것을 운명으로 삼았다.

1964년 차관을 얻고자 독일로 날아간 박정희 대통령은 막장 속에 목숨을 담보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광부들을 부둥켜 안고 “나라가 가난해서 여러분이 고생하고 있다” 울부 짖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근대화를 위하여 전쟁터보다 치열한, 지옥불보다 뜨거운 열정과 정열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1974년 쌀 자급자족의 꿈을 이루고, 중화학 공업 육성에 모든 혼을 불사르던 1975년 8월 1일 남해안 석유화학 단지를 둘러보며 일기를 남긴다.

“남해고속도로의 쾌적한 기분은 배할 데 없고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교통사정이 극히 불량하던 이 고장에 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연도(年度) 농촌의 모습도 일신하였고 연도 농촌이 기름져 보였다.

1963년 봄, 호우와 홍수로 보리농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다. 적미병이라는 맥류(麥類)에 걸린 병충해였다. 당시 이 지방을 지날 때 어느 농가에 들었더니 노인 농부가 썩은 보리이삭을 만지면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고 산답니까?" 하고 눈물이 글썽한 것을 보고 나는 ‘홍수 피해 복구에 농민들이 협력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정부가 여러분을 돌봐드릴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몹시도 나는 마음이 괴롭고 가슴이 아팠었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하던 날, 청중의 안전을 위해 총 쏘지 말라며 경호원을 제지하던 인간적인 박정희, 그는 자신의 부인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 사경을 넘나들 때, 저격현장을 떠나지 않고 중단된 연설을 끝냈다. 그리고 이어진 독립유공자 위로행사를 모두 마치고 병원을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 그는 일에 미쳐 있었다. 정확하게 대한민국에 미쳐 있었다. 결코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고 모진 모함 속에서 자신을 태울 뿐 자신의 운명의 굴레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다. 백년을 아니 그 이상을 먹여 살린 조국의 먹거리인 중화학 공업의 기반을 다진 1979년 10월에 두문장으로 작성된 마지막 일기를 남겨 놓았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 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너무도 치열한, 너무도 뜨거운 인간 박정희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의 10.26 그날이 지나고 위선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뜯어 먹으며 정치 모리배가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을 중상모략하는 것을 민주화라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했다. 박정희 대통령 그를 찾는 것, 그 희생의 역사를 찾는 것 그것은 후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에 남겨진 역사의 의무이다.

오늘이 32년 전 그 날이다.

<프런티어타임스 정문논객 (www.frontier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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