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항해 770km, 그들은 왜?
- 일가족 9명의 해상 탈북, 북한 체제 파산 입증
새벽어둠을 타고 그들은 배에 올랐다. 아주 작은 목선이었다.
아홉 식구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서로 기대어 앉았다.
삐걱거리는 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모터를 쓸 수는 없었다. 해안을 지키는 병사들이 들으면 당장 총탄이 날아올 것이었다. 힘껏 노를 저었지만 떠나온 뭍은 잡힐 듯 가까웠다. 그들은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지난 8일 청진을 떠나온 탈북 가족 9명이 13일 일본 해안에서 표류하다 일본 당국에 구조됐다. GPS(위성항법시스템)도 구명조끼조차 없이 이들은 770km를 달리고 혹은 해류에 밀리며 닷새간 생명의 항해를 한 것이다.
일본 당국의 조사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북한에서 온 가족과 친척들이라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북한 주민의 해상 탈출 역사는 길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지난 2007년 6월 일가 4명이 청진항을 떠나 900km를 항해해 일본 아오모리 현 후쿠우라 항에 도착한 일이 있다. 이들은 도착 2주 만에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가장 알려진 1987년 김만철씨의 탈북. 김씨 일가 11명은 역시 청진항을 떠나 일본 후쿠이 항에 도착했다.
당시 김 씨는 조총련계 통역원이 가고 싶은 나라를 묻자 “한국”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에둘러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대답에 난처해진 일본은 제3국인 타이완으로 보낸 뒤 한국으로 가게 하는 방식을 취해야 했다.
북한 주민들의 해상탈출은 이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2000년대 들어선 매년 서너 차례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탈출 이유는 고난의 행군 이후의 굶주림, 혹은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이다. 하지만 이번 일가족 9명의 경우 눈길을 끄는 발언이 있다. 이번 탈북을 이끈 지휘자 격인 이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북한 내에서는 나름 살만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그럼에도 탈북을 결심한 것은 ‘북한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의 북한을 보는 관점에서 이 발언은 중대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시사한다. 중국 등 내륙으로의 탈북이든, 해상 탈북이든 북한 탈출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실패하면 탈북자 본인들은 물론 가족친지까지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모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탈북자의 ‘북한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탈북했다’는 발언은 북한 주민들의 달라진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앉아서 굶어죽느니 탈북이라도 하자는 ‘생계형 탈북’이 아니라 타락하고 저물어가는 김정일-김정은의 공화국에 대해 기득권층도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북매체들이 최근 전한 북한 간부들의 중국은행 계좌 개설 러시 역시 이같이 저무는 왕조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9인의 탈북은 북한 체제의 파산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이들은 아직도 김일성 왕조에 대한 망상에 젖어 있는 국내 종북좌파에게 목숨을 건 항해로 “꿈에서 깨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프런티어타임스 온종림기자 (www.frontier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