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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9-07 20: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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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천왕봉)의 바위들>

추풍(秋風).

외로움을 타는 걸까

혼자서 왔다.

쓸쓸함을 타는 걸까.

낙엽을 쓸어간다.

추풍에 낙엽이다.

추풍이다.

일진광풍이 아니라 하여도,

낙엽은 1년의 여정을 끝맺는다.

연한 녹색은 푸름이 되고,

청춘인듯 푸름은 붉음으로 물든다.

추풍이 툭 건드리면 낙엽은 진다.

추풍에 산은 물든다.

그제서야 바위가 비장한 위용을 내보인다.

푸름에 숨겨진 바위였다.

내보일 수 없는 속앓이였다.

바위가 구름을 타고 오를 수는 없지만,

홀로가는 구름을 잡아둔다.

검은 바위가 하얀 구름을 닮아 흰색이 되었다.

바위가 구름을 잡아두려고 한 목적인가 보다.

추풍이 길을 가르킨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뒤돌아보면,

벌써 꽁무니를 감추었다.

산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한다.

풍경의 매혹에 반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위가 터 잡은 산에서는 그렇다.

칼바위(중산리 기점 1키로)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대면한다.

칼바위가 콧날같다.

나란히 솟은 바위 두개가 쌍검같다.

복수를 꿈꾼 것도 아닌데,

산은 복수의 마음도 거두게 하건만,

조선개국을 피하여 입산한 선비에게 반역의 칼을 뒤집어 쉬었다.

애꿎은 선비가 희생되었다.

칼바위가 슬픔에 젖어있는 이유이다.

철다리 삼거리(중산리 기점 1,3키로)이다.

택일이다.

가파른 법계사이고,

완만한 장터목이다.

남한 최고봉 천왕봉.

어디로 오른들 편한 꼼수가 통할까.

묵묵함이 있어야 당도할 수 있다.

마치 수직인듯,

법계사쪽 가파름에 접어든다.

무척이나 힘겹다.

세속의 명리를 더덕더덕 달고 있는 몸이다.

세속의 무거움이 그리도 큰 것이다.

숨이 멎을 지경이다.

그저 가쁜 호흡이다.

호흡을 정비하라는듯

육중한 망바위가 나타났다.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당같다.

치성을 탐문하는 검문소같다.

탄성을 지르고 만다.

수평의 탁트인 조망에 털썩 주저앉는다.

잠시 눈을 감는다.

캥거루바위이다.

그렇게 작명을 한다하여 책망당하지 않을 것이다.

법계사를 가리고 있는 바위이다.

캥거루처럼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이다.

하얗게 들어난 바위의 속살도,

떨어져 땅에 낙하한 바위도 지리산이 되었다.

2년의 세월이면,

분가한 캥거루바위가 평온을 찾기에 족한가 보다.

법계사(중산리에서 3.4키로지점) 위의 평바위이다.

일품이다.

풍기는 기운이 그렇다.

영겁의 세월을 겪어 거만할 법도 한데,

무욕을 움켜쥔 모양이 그렇다.

인간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경탄밖에 없다.

평바위에 앉아 욕심도 명리도 다 비운다.

누구라도 평바위에 앉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되돌아본다.

인생의 되돌아봄은 회한이지만,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인생이다.

산에서의 되돌아봄은 감탄이다.

평바위였기에 망정이지,

난간바위였더라면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심장이 요동친다.

뇌리가 텅비었다.

하마바위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축을 울리는듯 우뚝솟은 큰 바위이다.

하마바위의 부채살처럼 펼친 기운이 있어,

태초에 하늘이 열렸을 것이다.

하마바위가 통째로 솟았기에,

지리산의 모든 바위가 질서를 잡았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평바위에 한참을 누운 후에 정신을 가다듬는다.

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속세의 때를 땀으로 흘렸다.

물고기바위다(평바위에서 100미터 위쪽).

코끼리 크기의 통바위에 개미크기로 새겨진 물고기이다.

물고기 머리가 천왕봉으로 향했다.

천왕봉이 몽매에도 사무쳤는가 보다.

통과의례가 있다.

형식이 아니라 진중한 환영이다.

개선문(천왕봉기점 0.8키로)이 영접에 나섰다.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쌍수를 치듯,

개선문이 겹으로 빗장을 열고 있다.

개선문(두개의 솟은 바위)에 기대어 본다.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이다.

생명이 있기에 인간이 존엄한 것이 아니라

양심이 통하는 세상일 때 인간은 존엄할 수 있는 것이다.

존엄한 인간도 바위에 기대면 한 점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천왕샘(천왕봉기점 0.3키로).

석간수가 스며 나온다.

천왕샘의 석간수는,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것이다.

영험한 바위가 기운을 모아 펌프처럼 끌어올린 물이다.

천왕샘물은 거대한 바위의 기운의 징표인 것이다.

목을 축이는 것이지만,

바위의 기운으로 몸이 충만되는 것이다.

지존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다.

천왕봉(1915미터)이다.

정상에 선다.

햇살은 경사각으로 내린다.

더 골고루 비추기 위하여서다.

지존의 무대를 더 화사하게 함이다.

정상에는 햇살조차도 조응한다.

지존이란 무엇일까.

근엄함이 아니라,

권세가 아니라,

한없이 가슴을 열고 다 받아드리는 것이다.

영겁의 세월도,

찰나의 세월도 다 품는다.

햇살이 천왕봉에서 염탐하려고 한 것도 그 세월일 것이다.

너그러이 관용하고 있는 천왕봉이다.

오후의 햇살을 다 빨아드리고 있는 천왕봉이다.

산행일: 2011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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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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