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 北,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한 진정성있는 사과 필요
지난 2004년 벽두, 갑신년(甲申年)의 문을 열자마자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그 해 1월 4일부터 시작해서 3월 7일까지 안방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그것이다.
언뜻 재벌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 등 그렇고 그런 젊은 연인들의 삼각관계의 연장선에 있는 드라마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젊은이들의 심리적인 묘사를 다른 각도로 접근하여 나름대로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로 기억된다.
당시 무명이였던 조인성, 연적(戀敵)을 권총으로 쏘고 발리의 어느 백사장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자살하는 장면은 지금도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안타깝게도 폭탄테러, 쓰나미 등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섬이다. 2011년 여름, 발리섬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보도에 의하면 남ㆍ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에 이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지난 23일 아세안지역 안보포럼이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물론 이 만남의 의미는 큰 틀에서 보면 '한반도비핵화 논의'라는 명분이지만 작은 틀에서 보면 식량지원의 명분쌓기와도 맞물려 있다. 김정일의 방중 이후 급물살을 탄 6자회담설도 그 연장선에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이라는 3단계 방식은 올해 4월 중국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게 제안한 것이라고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김 제1부상의 힐러리 클린턴 장관과 회담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이고 그 연장선에서 6자회담도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도 커졌다.
조지 W 부시 정권 2년과 빌 클린턴 정권 6년 동안 북한의 원자로와 핵재처리공장은 가동을 멈쳤다고 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의제가 암시하고 있듯 이미 북한은 핵무장을 마쳤거나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내년 한ㆍ미 대선은 김정일에게 호재로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은 이 틈새를 최대한 활용,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식량지원 문제와 함께 그들의 반민주ㆍ비인권ㆍ실정(失政)과 타협하여 체제수호에 이용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사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핵도발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그대로 방치해 두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 역시 총선과 대선이 내년에 치러진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금강산 박왕자씨 피살, 천안함 폭침 사과, 연평도 도발 사과를 전제로 대화재개의 애드벌룬을 띄운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지난번 남북정상회담 해프닝 사건에서도 봤듯이 이미 상대방에게 패는 들키고 말았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으로 내걸었던 '그랜드 바겐(북핵 일괄타결)'에 대한 이번 언급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김성환 장관이 북의 박의춘 외무상에게 그동안 북측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사과 뉘앙스와 함께 "남북이 비핵화 회담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 측 위성락 수석대표가 북측 리용호 부상에게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면 안전보장과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정책을 새삼 설명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어쩌면 김정일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의 사과없이(있다 해도 형식적인 모양새만 유지할 가능성이 큼)금강산 관광은 계속될 것이고 대북지원 역시 자연스럽게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국제외교의 본질이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 해도 이유야 어쨌튼 이명박 정부의 외교 성과라는 입장에서 비교해 보면 판정패 당하는 꼴이 되고 만 셈이다.
그동안 땀흘린 보람도 없이 김정일의 한 두 번 방중(訪中)에 침식 당해버린 느낌도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틈만나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따른 사과 없이는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고 어떠한 대화나 지원은 없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었지만, 돌이켜 보면 북한이 천암함 폭침으로 우리 군인 46명을 수장시킨 지 다섯달만에 한나라당에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보내주자는 말이 나왔었다.
이번 발리 회담이 그것에 대한 명분쌓기 만남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벌써부터 대북민간인 지원이 시작되고 있지 않는가? 결국 외교전에도 지고, 심리전에도 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정황으로 보면 김정일의 협상 테이블은 임기말 정부보다는 다음 정부에 둘 가능성이 크다. 이제 느긋한 것은 김정일이요, 급한 것은 한ㆍ미 양측이 되고 말았다.
사실 정부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과 문제를 비핵화 대화 레일에서 남북관계를 다루는 별도의 대화 채널로 옮긴 것으로 보면 저자세 외교라는 인상이 짙고, 지나치게 앞서가는 느낌이다.
별개 사안이라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진전이 있는 것처럼 흥분한 느낌도 감출 수 없고, 덩달아 부화뇌동하는 일부 언론의 호들갑 역시 볼썽사납다. 분명한 것은 저들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동안 호전성(好戰性)만 배가(倍加)가 되었을 뿐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뒤집어 쒸우고 있는 것이 저들의 뻔뻔스러운 실체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돌부처를 상대한 편이 낫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번 발리 회담이 그 실효성을 얻으려면 우선 북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오동추야 프런티어 기고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