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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1-26 09: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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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보현산(해발 1126,4미터)

오솔길,
아스라한 오솔길이 계절을 징표하고 있다.
오솔길은 자연이다.
인공이 가미될 여지가 없다.
오솔길은 고향이다.
고향의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굽이길이다.
굽이에서 끝간 데가 보이도록 가늘게 펼쳐진다.
오솔길은 구부러진 길목에서 끝나는 것이다.

오솔길을 걷는다.
길 위에는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길 위에서는 무용한 것도 멋지다.
길 위에는 낙엽이 지천이다.
쌓여서 그렇게 보인다.
쓸어내지 않아서 그렇다.
아침에는 물기를 품어 영롱하다.
밤에는 온기를 품어서 안온하다.

오솔길 저 너머의 기억이 반추된다.
가로등이 비추는 야광이 희미하다.
굽이 한번 돌아서 저 만치 가본다.
금새 나타날 것 같은 이성을 찾아 떠난다.
내리는 것은 낙엽뿐 공허이다.
내리는 것은 청아한 공기일뿐 사람은 없다.
신작로를 만나는 지점에 오솔길이 끝난다.
신작로를 만나 젊은 방황이 멈춘다.

오! 솔길,
보현산에 탄성한다.
소나무의 길을 접어든다.
산초입부터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참나무가 소나무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소나무를 호위하는 호위병같다.
보현산에서는 참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당당하다.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그렇다.

산오르는 길,
굽이굽이 오솔길이다.
소나무에 탄성하는 오!, 솔길이다.
발밑에 소나무낙엽의 갈비가 노랗다.
갈비가 발자국 소리를 땅에 전한다.
땅이 포시랍다.

오른쪽으로 휘이 나아간다.
사라지는 꽁무니같다.
왼편으로 휘이 접어들면 뒷길이 사라진다.
길의 지그재그가 대칭을 만들고 있다.
점점으로 오른다.
점점의 발자국을 남긴다.

능선이 적요하다.
멀리 겨울잠행을 떠난 듯,
새들이 산을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숲이 내려 앉았다.
가을시간을 호령하던 억새가 겨울맞이로 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 정중하다.
구들장에 쓰기에 적합한 돌이 평평하게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의연하다.
여름 활엽수를 대체한 소나무만이 푸름으로 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자웅을 겨루던 활엽수가 잎을 다 떨구고 있다.
그래서 보현산은 소나무의 산이다.

능선에 오른다.
갈미봉(해발 789미터)이 보인다.
수줍음의 새색씨같다.
옷자락같은 안개로 가리고 우뚝 서있다.
갈미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평화롭다.
갈미봉으로 향하는 걸음이 푸르다.
갈미봉을 바라보는 시선이 맑다.
세상에서 제일 맑은 공기를 느낀다.
소나무가 보내는 반가운 수인사이다.

소나무가 방향타구실을 하고 있다.
산의 품을 기세로 긴 가지를 펼치고 있다.
소나무가지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동남쪽으로 펼친 가지가 일목요연하다.
그래서 소나무가 방향타가 된다.
길에서 벗어나 본다.
소나무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소나무가 전하는 음성을 경청한다.
경청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임을 깨닫는다.
소나무앞에서 세상의 소란을 경원한다.

평원같다.
큰 산에서는 완만한 경사가 그렇게 의미된다.
갈미봉 길목에서 평원을 느낀다.
그 옛적에 연기를 피워올렸을 봉수대를 떠올린다.
갈미봉 어디에 그 흔적을 추적하여 본다.
젊음을 다 바쳤을 봉수대의 용사가 떠오른다.
차가운 개울을 맨발로 떠나왔을 젊음이었을 것이다.
사명때문에 고향의 사무침도 참았을 것이다.
갈미봉은 그 세월의 사연으로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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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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