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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1-23 16: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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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서해상에서 북한 체제의 허구와 김정일 독재 통치를 비판하는 대북 전단을 날리는 모습. ⓒ 데일리안 변윤재기자
<데일리안 변윤재기자>탈북자들은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 친구 그리고 아직도 수령 독재에서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나옴으로 해서 남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죽음으로 몰렸어요.

그러니 그들이 신처럼 믿고 떠받드는 체제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진실을 알릴 사명과 책임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북전단과 같은 소극적 방법 뿐인데 이마저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부모, 형제를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그런 희생을 묵과하란 얘기입니다.”

‘삐라’와 ‘소식지’. 성격이 다른 두 단어가 최근 그를 바라보는 대조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40)는 최근 ‘남북관계 경색’의 주원인으로 꼽히면서 뭇매를 맞고있다. 그의 행보를 묵묵히 지지하며 지갑을 연 후원자들도 줄을 이었지만, 반면 ‘북한의 심기를 자극하고 이제껏 이룬 남북경협 등 공존의 길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는 진보좌파진영의 날센 비난도 받고 있다.

2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으면서 본의 아니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3년 7월 ‘자유의 비둘기 보내기 운동’이란 명칭으로 북한 인권 개선 및 민주화 운동을 위해 시작된 대북전단 날리기 행사는 언론의 관심에서 비껴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강경한지, 그리고 왜 그리도 절박하게 이 일에 매달리는지 언론도, 일반 국민들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5년여간 조용히 진행됐던 행사는 북한의 ‘협박’에 모두가 주목하는 이벤트가 됐다.

북한은 지난 10월2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전단’을 문제삼았다. “남측의 삐라 살포를 중단하고 살포 행위자의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해달라”라고 요구한 것. 이어 13일에는 ‘대북전단 살포가 중단되지 않으면 공단 문을 닫겠다’며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을 제한·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에 정부도 자제를 요청했다. 남북관계가 더욱 꼬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분위기는 오히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활동에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일반 국민들의 후원금도 많지 않았고, 언론도 관심이 없었다. 참 외로운 싸움이었다”며 “북한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후원금이 증가했고 격려전화도 늘었다”고 말했다. 10월에만 후원금이 1000만원이 넘었다.

그가 직접 보여준 통장에는 1만원 이상, 많게는 10만원까지 보낸 후원자의 이름이 빼곡했다. 접속자가 몰려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도 일어났고 “굴하지 말고 끝까지 해달라”는 전화도 10통이상 걸려온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을 남북대결주의에 사로잡혀 화해와 협력을 깨뜨리는 주범으로 몰고 있는 것에 불편해 하면서도 그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지지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박 대표는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 듯 보였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동안 박 대표의 휴대전화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그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로 인해 끊임없이 울렸다. 사무실 전화도 마찬가지. 박 대표는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탈북자들은 친북좌파 성향의 단체들에 표적이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 관련 시위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던 그는 친북 성향 단체들의 표적이 돼왔다.

“조국을 배신하고 온 놈”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위장간첩”이라고 몰아붙이는 이도 있었다. 협박전화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그 수가 더 늘면서 신변 안전을 위해 경찰과 함께 움직인다. 이날도 그의 사무실에는 2명의 사복형사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 ◇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2003년부터 시작했으니 횟수로는 6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이를 문제삼지 않다가 이제와서야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속셈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리 정부는 그대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답답하고 그렇습니다.”

박 대표는 “우리가 보내는 것은 삐라가 아니라 자유을 위한 소식지이자 전단”이라며 “북한 주민들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우리는 다만 이를 전달해주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1999년 가을 탈북해 2000년 봄 남한에 정착했다.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 체신학부(전자공학과) 출신 엘리트로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산하 속도전 지도국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평양에서 근무했다. 그의 부친은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를 파견한 39호실 간부였다.

그는 “(북한의 엘리트 출신이었던 만큼) 진실을 알릴 사명감과 책임감을 더 느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탈북의 대가로 숙부 2명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일가족 5명과 함께 목숨을 걸고 탈북했습니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압록강을 건너는 위험을 감수했지요. 살기 위해 이런 일을 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알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보위부에 끌려간 숙부들은 고문 끝에 사망했다. 2002년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중 2명이 당시 그의 숙부들과 같은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박 대표에게 “숙부들이 구타를 당하고 갖은 고문을 겪었다”고 전했다. 사촌동생들은 뿔뿔히 흩어져 꽃제비가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행방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박 대표는 “북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사촌동생들과 숙부들의 비보를 접하고 나서부터”라고 말했다. “나도 북한 수령 독재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됐고,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정권인가를 새삼 느꼈다. 그래서 더욱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고향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한 아픔으로 어두워졌다.

박 대표는 그동안 북한 인권 개선과 민주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북한 체제에 강도높은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2006년에는 남북 장관급 회담을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돼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상호주의를 완화한 내용의 신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에 반대하며 당시 한나라당 평화통일특위 위원장인 정형근 최고위원에 계란을 투척하기도 했다. 이같은 박 대표의 과감한 행동은 극단적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그가 경험한 북한 체제는 남한이 유연한 태도를 취할수록 선군독재체제를 강화하고, 통일은 더 멀어지게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강경한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우파에서 친북좌파 정권이라 비판하던 노무현 정부 때도 했던 일입니다. 대북전단의 내용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박 대표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새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수위를 높여가며 압박하고 있다”며 “대북전단과 관계가 있다면 5년전에는 왜 문제삼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에도 개성공단이 있었으니 전면 철수 등 강경한 대응을 할 법한데 북한은 지금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이다.

“5년 전에 됐지만 지금은 안 된다? 이건 형평성에 맞지 않지요. 북한의 태도가 변화된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남북 경색의 책임을 대북전단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박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체제를 민주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60년 동안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해왔습니다. 언론자유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북한에는 오로지 수령의 신격화와 찬양밖에 없습니다.

김정일을 절대화해서 그에 대한 비판을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불순분자가 되는 사회입니다. 남한에서 상상하는 이상으로 억압된 사회가 북한이예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거짓 속에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최면에 취하 듯 인간다운 삶이 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겁니다.”


▲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그는 “자유에 대해 읽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리게 되면 독재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우리는 북녘땅을 향해 전단을 보낸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남한에 오기 전엔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이 우리와 고통을 나누는 고독한 지도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는 자비로운 지도자도, 인민의 아버지도 아니었다”고 밝힌 박 대표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에 대해 궁금해 하기 때문에 이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북전단의 내용을 문제삼고 있다. A4용지 크기의 대북전단은 물에 젖지 않는 비닐로 제작된다.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들에게’라는 제목의 이 전단은 성혜림·고영희·김옥 등 알려진 이름 외에 홍일천·김명숙·이상진·손희림·정혜순·홍영희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9명의 여인과 가계도를 정리한 도표와 함께 선군독재체제의 모순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진보좌파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악랄하고 잔인한 독재자이자 살인마” 등으로 원색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북한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으며, 삐라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전단의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라며 “유럽사람들이 우리 제사상 와서 간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구조에 맞춘 것이자 우리가 체험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반인민적 세습군사독재를 타도하자거나 인민과 자신에게 충성하라는 말은 선군독재의 폐해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개선을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라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남북경협 등과 같은 교류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10여년 넘게 이를 지속해 왔지만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갔다는 징후가 없지 않습니까. 북한 내부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걸 위해 불씨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박 대표는 누구보다 대북전단의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1993년 원산에서 발견한 대북전단을 호기심으로 읽은 뒤 북한 체제의 허위를 깨달았다. 전단지에는 요덕수용소에서 탈출했다가 중국에서 붙잡혀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강철환·안혁씨가 남한에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구나”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박 대표는 “대북전단은 탈북이나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전단지 도우미인 황해도 단천의 군연맹위원장 출신 60대 아주머니도 대북전단을 보고 탈북했다. 그 아주머니는 화장실에서 10번도 넘게 읽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국경지역 북한 주민에게 휴대전화로 통화해 들었는데 대북전단과 관련해서, 보는 즉시 신고하라는 강연회가 수십차례 열렸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올 4월부터 1달러나 중국돈 5위안 또는 10위안을 넣어 보낸 뒤부터는 국경 인근 지역 주민들이 대북전단을 서로 먼저 주우려 하는 등 반응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남한 사람들에겐 큰 돈이 아니지만, 북한 주민들에겐 일반 노동자 1~2개월치 월급입니다. 북한이 반발하는 것만으로도 대북전단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걸 반증하는 거지요.”

그는 대북전단의 효과를 알고 있는 북한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데, 남한에서는 이같은 북한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지도자만 잘 모시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인간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드는 집단”이라며 “우리가 전단지 만들 때 관심 갖고 후원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피해자(북한 주민)에겐 냉담한 반면, 가해자(북한 정권)에게는 반박조차 못하는 게 과연 올바른 현실이냐”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촛불집회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더러 하지 말라고 한다. 기준이 왜 달라야 하느냐”며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중시하던 사람들이, 거짓을 바로잡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진보좌파들은 우리에게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정보마저 차단하고 침묵하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언어도단이냐”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특히 민노당 방북단이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측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통이 터진다. 전단 살포를 막는 적극적 조치가 선행되지 아니하고, 계속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한다면 12월 1일 북측의 전면 차단조치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격앙된 분위기를 전하며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촉구한 것에 대해 “북한 인권 개선에는 침묵하던 사람들이 북한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박 대표는 대북전단에 대해 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과 언론출판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것. 그는 “북한의 협박과 공갈이 두려워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퇴색시키고 피 흘려 이룬 체제를 뒤로 돌려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우리가 말하는 건 80, 90%가 거짓인 북한 정권의 실체이고 우리는 합법적인 단체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없는 법이라도 만들어 우릴 막겠다는 거냐”고 말했다.

▲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9월23일 유엔 총회에 참석중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뉴욕에서 면담하고 북한인권개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맨 왼쪽이 박상학 대표. ⓒ 자유북한운동연합.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노동신문·조선중앙방송 같은 북한 언론이 먼저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니 역도니 하며 비방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대북퍼주기를 운운하며 할 말도 못한다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제해 달라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데 지금처럼 나왔으면 아마 난리가 났겠지요.”

그는 “이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아달라고 했을 때 북한 인권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구나, 할 말은 하겠구나 생각했다”며 “그러나 국외적으로는 북한 인권에 대해 강력히 말하면서 정작 집안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오히려 북한 주민들로부터 더 멀어지는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 (후보 때부터) 강조한 소신과 신념, 원칙을 바꿔선 안 된다”고 씁쓸해 했다.

박 대표는 대북전단에 대한 우려는 남북관계, 특히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전쟁공포증과 집단이기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유지가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북한은 외투는 커녕 양말도 벗지 않았는데 우리는 옷을 벗었습니다. 탈북자 수가 줄지도 않았고 기아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더러, 북한의 핵실험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이 되돌아왔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정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란 걸 압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의 위협에 불안해하고 김정일은 대적하지 못할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끼리를 외치지만,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폭정에 시달리는 건 관심을 두지도 않지요.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채 잘못된 정책을 폄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눈을 찌른 격이 됐습니다.”

박 대표는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은 돈주머니이기 때문에 닫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상투적 협박”이라는 생각이다.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그곳에 들어간 기업체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렸습니다. 사업이 계속될수록 적자가 누적돼 일부는 차라리 중단이라도 해서 보상을 받자는 말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당 간부들이 노골적으로 달러나 노트북 등 뇌물을 요구하는 일도 적지 않고 노동자들이 물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북한측 노동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점심을 굶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만 실질적으로 이들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일부분”이라며 “북한 노동자들은 쌀이나 기타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는 우대물자 보급증을 받는다. 평균 58~64달러의 임금의 대부분은 북한 정권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익을 예측할 수 있고, 손해를 상쇄할 수 있는 국제적 시스템도 적용되지 않는 개성공단은 정치적 베일에 가려 부풀려졌다”며 “국정조사를 해서 개성공단의 득실을 정확히 따질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개성공단이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남한 사회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견해는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민족공조와 개혁개방의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림의 떡”이었다는 것.

그는 “내 삶과 직접적 연관이 없으면 외면하는 게 사람의 생리인데,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의 화려함과 황홀함을 눈으로만 봤다. 남한이 잘 산다 해도 내 배에 들어오는 건 없으니 구경거리 이상은 아니라는 반응”이라며 “차라리 1,2달러라도 직접 돈을 받아 암시장에서 쌀이라도 사서 배불리 먹는 게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박왕자씨 총격살해에 대한 공식 사과 △대한민국 모독 중지 △핵실험 중지와 핵무기 폐기 △중국에서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지 △정치범 수용소 폐지 등 5대 전제조건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북전단 살포는 중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지금까지 한 해 180만~200만 장씩 900만 장을 뿌렸습니다. 한번 보낼 때마다 평균 400만~500만원이 드는데, 바다에서 보낼 때는 육지보다 더 비용이 올라가지요. 이제까진 미국의 디펜스포럼, 북한자유주의연대의 지원과 회원의 회비, 그리고 탈북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충당했는데 처음으로 후원금만으로 대북전단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억눌렀던 북한에서 남한에 온 뒤 저는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기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이런 기분일 겁니다. 고향이 그립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아있는 그들이 조금 더 인간답게 살도록 미력이나마 보태는 겁니다. 부모나 형제, 친지가 탈북으로 인해 희생당한 우리 탈북자들은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일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의무이자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선군독재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그날까지 계속할 겁니다.”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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