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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1-22 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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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회룡포


가파르지 않는 산길을 길다.
가파른 산길은 험난하지만 짧다.
지름길을 만드느라 그런 것이다.


평지에 서면,
게으름을 피우기 십상이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꾀를 부려서 핑계를 된다.
산길에 접어들면,
먼길을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소나무를 은폐물로 하여,
평상에 젖어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본다.
편안함은 시골마을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멀리서 그 편안함을 바라다본다.
그러면 들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치고 싶었지만,
낮선 개입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예천의 회룡포,
마치 용이 굽이치듯 흐르는 물,
정상인 사림봉에서 그 마을을 내려다본다.
회룡포가 남성의 성기를 형상하고 있다.
그래서 왕조에 반역하는 장정이 태어날까 두려워,
그 혈맥을 잘랐다.
섬뜩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비가 내리면 선혈같은 붉은 흙물이 흘러내린다.
그 계곡의 이름이 사골이다.


사림봉에서 소나무의 가녀림을 본다.
아마도 수백년의 수령이 되는 나무이다.
햇살이 버거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산정의 바람이 세차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절단의 역사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지름길을 찾아 하산을 한다.
언덕을 가로 지르려니 가파름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회룡포의 강물에 맨발을 담구고 싶어서다.
맑은 물에 보이는 모레를 밟으면서,
발을 타고 전하여 오는 아싸함을 누려본다.


문득 외로운 생각이 든다.
역사란 당하는 자에겐 처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겪고서도 겉으로는 온전한 회룡포마을이다.
외로움은 휴식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외로울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안하여도 된다.
오직 그 시간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일에서의 휴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추신: 예천 회룡포는 배처럼 생겼다하여 우물이 없다.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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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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